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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철 프로필 생애 정리

0다드림0 발행일 : 2024-07-16

현철 프로필 생애 정리

 

1942년 6월 17일,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도도리에서 태어난 현철, 본명 강상수는 후에 대한민국의 대표 트로트 가수가 되었다.

 

 

그의 출생지는 현재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2동 월포마을이다.

 

비록 1945년생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인터넷에서 잘못 전파된 나이이다.

 

 

그는 부산동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1년에 동아대학교 경영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였지만, 이듬해 자퇴하고 입대했다가 전역했다.

 

음악 경력의 시작

현철의 가수 데뷔는 1969년으로, 그는 27세에 〈무정한 그대〉를 발표하며 가요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당시 남진과 나훈아가 주목받고 있었기에 그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74년, 그는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가 '현철과 벌떼들'을 결성하여 팝송을 리메이크하며 활동했으나, 긴 무명 시절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트로트 가수로 전향

 

 

1980년, '현철과 벌떼들'이 해체된 후 현철은 솔로로 전향했다.

 

1982년에 발표한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인기를 얻었으나 방송 출연이 적어 얼굴 없는 가수로 불렸다.

 

1983년, 트로트로 전향한 그는 〈사랑은 나비인가봐〉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84년에는 신행일의 〈청춘을 돌려다오〉를 리메이크하여 활동했고, 1985년에는 나훈아와 함께 이 곡을 불러 더 큰 인기를 얻었다.

 

1987년에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현장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인지도 상승과 전성기

현철은 1980년대 후반부터 인지도를 높여가며 1988년에 발표한 〈봉선화 연정〉으로 1989년 KBS 가요대상을 수상했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무명 시절의 고통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1990년, 〈싫다 싫어〉로 2년 연속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면서 정상급 가수로 성장했다.

 

같은 해 문희옥과 함께 《잘했군 잘했어 메들리》, 《항구 메들리》로 혼성 듀엣 메들리를 발표했다.

 

1988년부터는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며 침체된 트로트를 부활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이후의 활동

1998년에 발표된 〈사랑의 이름표〉는 솔직한 가사와 리드미컬한 트로트 리듬으로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2002년 발표한 〈아미새〉는 다양한 세대에게 사랑받았으며, 2012년에는 나훈아의 〈고장난 벽시계〉를 리메이크하여 여전한 기량을 선보였다.

 

노년기의 도전과 극복

2007년 9월 5일, 65세의 현철은 공연 리허설 중 무대에서 추락하여 갈비뼈 골절과 폐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9월 13일 장충체육관에서 공연을 강행했다.

 

2010년대 들어서도 그는 신곡을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2019년 이후로는 건강 문제로 인해 방송 출연이 드물어졌고, 공연도 중단했다.

 

마지막 날들

2020년 11월 16일, 현철은 가요무대에서 〈봉선화 연정〉을 불렀다.

 

그의 모습은 힘겨워 보였으나 여전히 경이로운 성량을 자랑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뇌경색으로 인해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2023년 4월 13일, 그의 아내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철의 근황이 전해졌다. 그는 경추 디스크 문제로 인지 기능이 저하되었고, 현재 재활 치료를 병행하고 있었다.

 

사망과 유산

2024년 7월 15일 밤, 현철은 서울 광진구 혜민병원에서 뇌경색으로 향년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현철은 평생을 노래에 바쳤으며, 그가 남긴 음악은 오랫동안 대중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 트로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후배 가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현철의 삶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끈기로 가득 찬 여정이었다. 그의 목소리와 노래는 세대를 넘어 사랑받으며, 그의 이야기는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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